김영하 작가의 ‘오직 두 사람’ 이라는 글을 읽었어. ‘오직 두 사람’ 이라는 책에 처음 나오는 이야기야. 7개의 짧은 이야기를 하나의 책으로 묶어 냈더라구. ‘오직 두 사람’은 그 첫번째 이야기야.
내가 쓰는 이 글 처럼 ‘오직 두 사람’은 편지글로 되어 있어. 주인공이 언니에게 자기 이야기를 풀어 놓는거지. 그 언니랑은 어떤 관계인지 모르겠어. 다만, 이렇게 깊은 이야기를 풀어 놓는걸 보면 믿을만한 가까운 사이겠지.
이 이야기는 아빠와 아주 친한 ‘현주’라는 이름을 가진 딸의 이야기야. 김영하 작가는 처음에 세상에 쓰는 사람이 거의 없는 ‘희귀언어’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을 해. 세상에 그 언어를 쓰는 사람은 이제 2사람 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게 되고, 그래서 그 언어를 쓰는 사람은 자기 밖에 남지 않게 되지.
이게 웬 뜬금없는 언어 이야기 이지? 그것도 ‘희귀 언어’? 근데, 이야기를 다 읽어 보면 김영하 작가가 왜 그 이야기로 시작했는지 알 수 있어. 좀 뜬금 없고 대관절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안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어. 아빠와 주인공의 관계랑 감정이 다 들어 있지. 그냥 지나치지 말고 꼼꼼히 읽어 봐.
주인공 현주는 아빠의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으며 성장해. 아빠는 능력있는 대학교수였어. 직업적 능력 뿐 아니라 육체적인 에너지, 그 외 모든 면에서 아빠는 매력적인 사람이었지. 그 멋진 아빠는 딸을 너무나 사랑해. 주변의 가족과 지인들이 살짝 이상함을 느낄 정도로 좋아하지. 그렇다고 성적인 느낌이나 관계는 전혀 없어. 김영하 작가는 그런 느낌은 철저히 배제해. 현주와 아빠는 모든 것이 잘 맞았어. 예술과 철학을 이야기 하고, 시시껄렁한 농담도 즐겼어. 마치 둘 만 아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 처럼.
현주가 고등학교를 졸업 하던 해, 아빠는 현주와 함께 유럽 여행을 떠나. 다른 가족들의 서운함과 당황스러움은 알바 아니지. 유럽에서의 꿈같은 몇 주가 지나고, 현주는 조금씩 아빠가 불편해 지기 시작해. 아빠 이외의 관계들, 아빠가 없어도 되는 시간들을 아빠는 허락하지 않아. 현주는 조금 이상하거나 불편함을 느꼈지만, 이내 아빠를 이해하고 아빠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지.
아빠가 현주에게 무리한걸 요구 하지는 않지만 꾸준하게, 어찌 보면 집요할 정도로 현주의 일상을 공유해. 늘 저녁을 함께 먹는 다던지, 아니면 좋은 곳에서 정기적으로 외식을 한던지 하는. 당연히 이런것들은 현주가 다른 친구나 이성을 만나는것을 어렵게 만들어.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현주는 깊이 사랑하지 못했어. 어색하고 불편했지. 마치 서로 완전히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 처럼.
그러다가 현주는 마흔이 되. 원하던 대학교수가 되진 못했고, 학원강사를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 남자를 만나는 것도 이제는 어려워졌지. 그 사이 엄마와 아빠는 이혼하고, 동생과 엄마는 미국으로 건너가고, 오빠는 따로 살게되. 아빠를 둘러싸고 있던 여러 여자 문제들을 같이 겪으며 돕다가 아빠에게 질린 현주는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에서의 삶은 아무런 문제 없이 편안했지만, 현주는 문득 공허함을 느껴.
그 때 현주는 깨달았던 거야. 아빠와 자기는 세상에서 아무도 쓰지 않은 '희귀 언어'를 공유하던 사이였다는걸. 모국어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건 아빠 밖에 없었다는걸.
'다섯 문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0) | 2023.05.18 |
---|---|
존엄하게 산다는 것 - 게랄트 휘터 (0) | 2020.04.11 |
오늘 뭐 배웠니? (0) | 2020.0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