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철가 - 판소리, 단가 (봄과 청춘)
https://www.youtube.com/watch?v=zToWYRbVJPs
이산 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 왔건마는 세상 사 쓸쓸하드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허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반겨 헌들 쓸데 있나?
봄아, 왔다가 갈려거든 가거라.
네가 가도 여름이 되면 `녹음방초승화시(綠陰芳草勝花時)라' 옛부터 일러있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돌아오면 한로삭풍 (寒露朔風) 요란해도 제 절개를 굽히지 않는 황국단풍(黃菊丹楓)도 어떠한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돌아오면, 낙목한천(落木寒天) 찬바람에 백설만 펄펄 휘날리여 은세계가 되고 보면,
월백(月白) 설백(雪白) 천지백(天地白)허니 모두가 백발의 벗이로구나.
무정세월은 덧없이 흘러가고, 이 내 청춘도 아차 한번 늙어지면 다시 청춘은 어려워라.
어와, 세상 벗님네들, 이내 한말 들어 보소.
인간이 모두가 팔십을 산다고 해도, 병든 날과 잠든 날, 걱정근심 다 제하면 단 사십도 못 살 인생,
아차 한번 죽어지면 북망산천의 흙이로구나.
사후에 만반진수(滿盤珍羞), 불여 생전(不如 生前)에 일배주(一杯酒)만도 못하느니라.
세월아, 세월아, 세월아 가지 말어라. 아까운 청춘들이 다 늙는다.
세월아 가지 마라, 가는 세월 어쩔그나.
늘어진 계수나무 끝어리다가 대랑 매달아 놓고 국곡투식(國穀偸食)허는 놈과 부모불효 허는 놈과 형제화목 못 허는놈,
차례로 잡아다가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 버리고,
나머지 벗님네들 서로 모아 앉아서 "한잔 더 먹소, 그만 먹게"하면서, 거드렁 거리고 놀아보자.
김수연 명창 풍경 : 영화 "서편제"에서
어제(2020년 3월 21일) 부터 날이 따듯하더라. 바람에는 가끔 상쾌함이 묻어났다. 우연히 듣다가 가슴에 와서 꽂힌 노래다. 판소리가 귀에 꽂히긴 처음이다. 이산, 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하드라.
봄아, 왔다가 갈려거든 가거라. 한 치도 더하거나 뺄 수 없는 간결한 시적 표현이다.
봄이 가도, 푸르게 우거진 숲과 향기로운 풀이 꽃보다 나은 시절이 온다. 찬 이슬과 찬 바람이 불어와도 노란 들국화와 붉은 단풍은 꿋꿋이 버티는구나. 찬 바람에 나무가 쓰러져도 펄펄 내리는 눈이 온 세상 모두를 하얀 머리를 가진 친구가 되는구나.
시간은 사람의 마음을 상관하지 않고 흘러가고 청춘도 잠깐, 죽음은 가깝구나. 죽고 난 후에 좋은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한 잔의 술 만도 못하구나.
나라의 곡식을 훔쳐먹는 놈과 부모님께 효도하지 못하는 놈, 형제끼리 싸우는 놈 차례로 잡아다가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 버리자.
나머지 벗님들 서로 모아 앉아서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거드렁 거리고 놀아 보자.